사제의 고백과 다짐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감자 껍질 벗기기의 비유를 드시면서 토실토실한 감자가 먼저 껍질이 벗겨집니다. 바구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은 감자일까요? 아닐까요? 바구니에 있는 것들도 감자입니다.성당에 다니면서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교만한 신자분들도 여전히 그리스도 신앙인임을 받아들이십시오. 이렇게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보시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먼저 신앙을 가졌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아직 신앙이 무르익지 않은 사람들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교만 속에 사는 것이며 헛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벗겨지지 않고 남은 감자는 어머니께서 하시듯 숟가락이나 칼로 벗겨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로 저희를 다루십니다. 잘 벗겨진 감자를 삶으면 여러 익힌 감자들 중에서 보기 좋은 것을 먼저 우리가 골라먹듯이 하느님께서도 제일 먼저 껍질이 벗겨진 겸손한 신앙인을 봉사자로 쓰십니다. 뒤늦게 벗겨진 감자들은 먹을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먹듯이 뒤늦게 벗겨진 신앙인은 봉사자가 하나도 없는 경우에 하느님께서 쓰십니다.사람이 선물이자 고통입니다. 성령의 지혜는 그 부족하고 나약한 골짜기를 본인이 메꾸도록 하십니다.
장가간 아들과 함께 사는 아버지를 폭력과 학대하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시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야 본인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시아버지를 굶기고 때린 것을 남편이 장에서 돌아와 알았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당장 부인을 나무라지 않고 고을 장에 갔더니 살찐 할아버지를 시장에서 산다는 방을 보았다며 아내에게 아버지를 잘 먹여 팔아버리자고 설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시아버지를 굶겨 죽여 빈손이 되는 것보다는 잘 먹여 팔아버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시아버지에게 진수성찬을 차려드리며 섬깁니다.
며느리가 집 밖에 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효부라며 인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남편은 아내에게 살찌신 아버지를 이제는 팔아도 되겠다며 시장에 가는 길에 팔아버리자고 말하자 그제서야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며 절대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이처럼 우리도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적어도 자기 가족만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덕을 쌓아 좋은 증언을 해줄 이들을 적어도 3명만 아니 가족만이라도 그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1. 덕이란 복음적 언어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곱게 한복을 차려 입으신 자매님께 "더운데 뭐하라 입었어, 보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어디서 얻어 입었지." 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절대로 복음적 언행이 아닙니다.2. 지하철 안에서 "빈자리 하나 주십시오." 라고 성모님께 기도를 하면 금방 자리가 나는데 본인이 앉기도 전에 잽싸게 아주머니가 앉는 일이 많습니다. 작은 선행을 날마다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의 유년기를 시작할 때,
또 삶의 여정을 마치는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사제들의 손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 베푸는 참된 우리의 체온
우리는 그 손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죄에 물든 우리를 천사처럼 순결하게 만드는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아름다운 손.
매일매일 제단에서 바치는 미사를 통해
어좌에 앉은 왕의 모습을 보듯
우리는 그의 손을 보느니,
그들 자신의 위대함과 장점이 결여된다 해도
사제의 품위는 언제나 가장 뛰어나고
숭고한 선물인 것을.
아침의 고요 속에 태양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무렵,
영성체로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키는 깨끗한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아름다운 손.
나약한 우리가 시시로 죄의 유혹에 떨어져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그 부끄러움, 그 잘못을 단 한 번도 아니고
거듭 거듭 사해주는 거룩한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아름다운 손.
사람들이 인생의 반려자를 구해 결혼식을 올릴 때,
주께 대한 사랑으로 서약이나 서원을 할 때,
다른 손들은 잔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만,
사랑의 약속을 하나로 묶어 축복해주는 감사한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손.
우리들의 눈썹에 죽음의 슬픈 이슬이 맺힐 때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는 손.
하느님의 영원한 축복 속에 우리의 눈을 감겨주는
그 아름다운 사제의 손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 형석 스테파노 신부님 서품 11주년에
국립경찰병원 천주교 원목실 봉사자 일동 드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전에 서품기념일에 받은 글인데 이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사제 수품때의 첫마음이 생각납니다.
모든 이의 길벗이 되고픈 마음, 그 길이 어떤 길일지라도 함께 걷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사순시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그 손길을
가슴 깊히 사제의 손을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저의 바램이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길벗 고수 외침.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필립 2, 12b-13). 아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랑하는 사랑살이 믿음터 회원님들께
5년 동안 원목을 회고하면서 만났던 많은 환우분들과 보호자, 간병인, 의료인, 여러분들을 통해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바로 그들 곁에 주님이 늘 함께 하셨기에 눈 앞에서 벌어지는 병고와 죽음 앞에 겪는
제자신의 처절한 무력감마저 살아계신 주님께
더욱더 의탁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 곁에는 이미 주님께서 제가 가기 전에 와 계심 또한 고백합니다.
병고 속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향한 희망과 주님만을 굳게 믿으며 생을 주신 당신을
더욱 사랑하고자 애쓰는 그들의 신음 소리 속에서도 하느님께 온몸과 맘을 다시 돌려드리는
그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고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그들을 영적으로 돌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돌봄이 가능하지 않으면 그들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뵐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신
우리들의 하느님께 또 다시 모든 것을 맡기며 제게 맡겨 주신 새 사람들을 향해 떠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이는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주님처럼 이제 저도 눈을 감고
더욱 온전히 주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당신께 믿음을 고백하고
보이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그분들을 통해 보고 느끼고자 합니다.
사랑을 산다는 것, 사랑을 간직하신 여러분들이 함께 모여 더욱 크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터전이 되기를 바라며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사랑과 평화가 언제나 차고 흘러 넘치시길 손모아
기도합니다.
그동안 만났던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칩니다.
길벗 고수 외침.
추신: 앞을 보지 못하시는 시각장애인분들과 그분들의 가정을 위해, 저보다 먼저 먼 길을 떠나신 미선젬마 수녀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제 후임으로 오시는 원목신부님들 - 최대식 요셉, 김병훈 알렉시오, 박지훈안드레아-에게도 제게 베푸셨던 큰 사랑과 환대를 아낌없이 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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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저는 무녀 독남 외아들로 4년 전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시어
지금은 어머니도 홀로 살고 계십니다. 7월 5일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이 바로 저의 사제 서품일입니다.
본당에서 사목을 하다가 원목을 한 지는 5년째 입니다.
처음 병자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아픈 분들을 매일 만나 그들의 시름과 한탄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제 생애 가장 큰 상실을 체험한 뒤에 병자들과 보호자인 가족들에게 더 큰 연민과 공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미리 원목을 통해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하느님의 사랑과 그 돌보심이 얼마나 크신지 말로 다 할 수 없음을 체험했습니다.
그 이후로 원목자에게는 "살아있는 문헌"인 환자분들을 뵐 때마다
그들이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까지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 은총과 사랑 덕분이라는 고백을 통해 앓는 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분들을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랑살이 믿음터 가족들이 되시길 손 모아 기도합니다. 추신:
1. 저의 서품 성구는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 8, 31-32) 말씀입니다. 아멘. 2. 좋아하는 것은 바다, 배, 등대, 파랑, 사진, 그림, 국악, 째즈 보컬, 클래식, 꿈꾸기, 김민기, 김광석, 장필순, 이상은, 안도현, 안치환, 바비킴, 전제덕, 우리차, 중국차, 진한 커피, 다기, 책, 만년필, 커리, 고기, 고추와 고추장, 막걸리, 독주(진도 홍주같은), 양주, 포도주, 향과 향로, 모든 과일, 수영, 스킨 스쿠바, 세일링, 스케이트, 탁구, 농구, 축구, 당구, 스키, 포커, 고스톱 등등.
3. 사랑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여인, 그리고 나.
4, 즐겨하는 것은 목욕, 사진 찍기, 음악 듣기, 책 읽기, 성경 쓰기, 다운 받은 영화 몰아 보기, 담배 피기,
놀기, 잠자기, 늑장 부리기 등등. 5. 싫어하는 것은 물렁물렁한 음식(두부, 묵, 삶은 당근)과 풀(야채, 나물 등등), 황색, 남앞에 서기,
소란스러운 것, 노래방, 왁스 노래, 변명, 신체적 특징의 별명과 놀림, 술 마실 때 말 많은 것, 뒷북치는 것, 뒷담화, 기수나 연배 따지는 것. 이상 두서 없이 저랑 사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적어봅니다. 길벗 고수 외침. |




성공의 잣대 - 랄프 왈도 에머슨-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소지을 수 있다면,
지성인들로부터 존중을 받는다면,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면,
거짓된 친구의 배반을 견뎌 낸다면,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면,
타인들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준다면,
웃음을 잃지 않고 삶을 즐기며 살아왔다면,
열정적으로 기쁨을 노래했다면,
그대의 존재로
단 한사람이라도 좀더 편안히 숨쉴 수 있었다면,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삶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일년을 시작 할 때는
하루를 시작할 때는 '사랑'을 생각하세요.
오늘 누구에게 내 사랑을 전할까 생각하세요.
하루가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오늘 할 일이 아니라 오늘 전한 사랑입니다.
일주일을 시작할 때는 '웃음'을 생각하세요.
일주일은 밝은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입니다.
일주일이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 밝게 웃은 일입니다.
한달을 시작할 때는 '믿음'을 생각하세요.
한달은 내가 확신하는 일을 실천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한달이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의심했던 일들이 아니라
믿고 행한 일들입니다.
일년을 시작할 때는 '새로운 꿈'을 생각하세요.
일년은 꿈을 심고 가꾸기에 넉넉한 시간입니다.
일년이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계속하던 많은 일이 아니라
새로 시작한 한 가지 일입니다.
....정용철의 "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
이보게 친구야!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이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벼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요,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들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고,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도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산대사, 그가 85세로 운명하기 직전, 위의 시를 읊고 나서 제자들 앞에서 앉아서 입적하였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지난 사목이란 월보에 서품 동기 신부가 지인에게 받은 글이라고 소개한 뒤
실은 글입니다.
삶과 죽음, 존재와 소유가 무엇이길래, 늘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야를 고민해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쳤으면서도 아직 그 미완성된 인생을 버거워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의 옛날 사진을 옛 홈피에서 발견하고 여기 올립니다.
이보게 친구야!
길벗 고수 외침.
